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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후기/팟캐스트 요약

[지대넓얕] LIFE 지의 발자취와 LIFE 사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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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 153회-154회 [예술] LIFE 그리고 사진


들어가며

오늘은 지대넓얕에서 소개한 LIFE 사진전에 관해 알아보겠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사진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 주제를 듣는 순간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6월달에 '모리스 드 블라맹크 전'을 보러 갔을 때,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 예정인 것을 보고 이 사진전을 꼭 가보고 싶었는데, 딱 이 주제에 대해 다루는 것을 보고 흥미로울 수 밖에 없었지요.

지대넓얕에서 다룬 LIFE 잡지와 로버트 파카를 다뤄보겠습니다.




LIFE 잡지



미국 뉴욕에서 1936년 창간된 시사 화보 잡지로, 보도 시사 잡지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로 국제 문제를 비중있게 다뤘으나, 현재는 폐간되어 웹사이트만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LIFE 잡지는 유머, 사회적 논평과 풍자를 다룬 일러스트레이션 중심의 잡지였습니다. 하지만 인기가 많이 없었는데요, 이때 미국 잡지의 왕 헨리 루스가 이 LIFE 잡지를 인수하면서 1936년 11월 23일, 새로운 주간 시사 잡지로 변화하게 됩니다. 이 헨리 루스는 1929년에 시사 주간지 TIME, 1930년 종합 경제지 FORTUNE 지를 창간한 말 그대로 잡지왕 입니다. 헨리 루스는 사진이라는 매체가 앞으로 큰 영향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하여 한주간의 정보를 사진을 통해 전달하고자 LIFE 지를 만든 것입니다. '일만 마디의 말보다 사진 한장이 더 많은 이야기를 한다.'는 명언을 남기게 됩니다. 사진을 새로운 언어로써 인식한 것이지요.


모토

삶이 있는 곳에는 인생이 있다. While there's LIFE, there's hope. 

인생을 보려면, 세상을 보아라. To see LIFE; to see the world.


역사

창간호는 신생아를 받아든 의사의 사진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LIFE 지의 창간과 삶(Life)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첫 창간부터 큰 이슈가 되어 46만부는 완판됩니다. 1년 뒤에 100만부 돌파하였으나, 2년 뒤, 아기의 탄생에서부터 출산까지의 과정을 적나라하게 나타내었다가 일부 주 에서 판매금지 처분을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로인해 전 세계적으로 더욱 유명해지는 계기가 됩니다. 3년 뒤, 200만부를 돌파하게 되고 1960년대까지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게 됩니다.


LIFE 지는 모든 연령의 미국인이 볼 수 있는 대중 잡지가 되고자 했습니다. 대중의 관심사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쉬우며, 희망적인 결과를 나타낼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했습니다. 기사의 대부분은 글이 아닌 사진으로 나타내겠다는 방향성을 가집니다.




채사장님은 라이프가 최고의 잡지가 될 수 있었던 요인을 다음의 4가지로 정리합니다.

1. 인적, 물적 자원에 대한 과감한 투자 - 처칠 수상의 장례식을 취재하기 위해 장례가 열리기 전 2년 전에 일정, 동선, 장소임대를 마칩니다.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양의 필름을 전세기 보잉 707기에 실어 기내에서 필름 현상, 사진 인화, 선별, 기사작성에서 편집까지 마치게 됩니다. 토요일의 장례식이 토요일 밤에 인쇄되어 미국에서 발행되었다고 합니다. 이 뿐만 아니라 LIFE 소속의 사진 작가가 아니더라도 지원과 투자를 해 주었습니다.

2. 기술의 발달 - 사진술과 인쇄술의 발달로 지금 우리가 봐도 어색하지 않은 선명한 화질이 가능했습니다.

3. 사회 경제적 환경의 변화 - 미국이 산업국가로 변화하면서 광고 시장이 크면서 미디어, 사진의 영향이 커지게 된 것이지요. 잡지의 1/3이 광고가 실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4. 전쟁 - LIFE 가 뜬 가장 큰 이유로 꼽습니다. 사진 잡지로는 최초로 2차 세계 대전을 종군 보도하며 전쟁터에 많은 사진 작가들을 파견합니다. 패널들은 이 시기에 많은 전쟁이 있었던 점을 이유로 꼽기도 합니다. LIFE 지는 종군 사진 작가를 양성하기 위해 학교까지 설립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쇄매체에서 영상매체로의 전환이 일어나면서 광고가 급격히 줄어들게 되었고, 투자에 대한 적자가 발생하게 되면서 LIFE 지는 1972년 12월 8일 폐간을 선언하게 됩니다. 그 후로도 복간과 폐간을 반복하다가 2007년 완전 폐간을 결정하게 됩니다. 현재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사진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Time 지의 홈페이지를 통해 접속 가능 합니다. (http://time.com/photography/life/)



로버트 카파

'당신의 사진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충분히 다가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종군 사진 작가로 꼽힙니다. 


로버트 카파 (본명 : 안드레 에르뇌 프리드만) 는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가난한 유대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19살이 되던 1936년 반유대주의를 피해 베를린으로 간 카파는 사진 에이전시의 조수로 취직합니다. 그곳에서 보도사진 작가가 되고, 미국식 이름 로버트 카파로 개명하게 됩니다.


22살, 스페인 내전현장으로 가 그 유명한 쓰러지는 스페인 병사를 찍으며 일약 스타가 됩니다. (이 사진은 연출설이 있긴 합니다.)



이후에도 2차 세계대전, 중일전쟁, 이스라엘 독립전쟁, 베트남 전쟁 등에 모두 참여하여 전쟁사진을 찍었습니다. 그의 노르망디 상륙작전 사진은 흔들리고 초점이 맞지 않지만 전쟁터에 있는 것처럼 떨리고 화약냄새가 납니다. 카파는 라이카 카메라로 106장을 찍었으나, 현상 실수로 8장만이 남게 된 것은 너무나 아쉬운 일입니다.



카파는 프리랜서 사진 작가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1947년에는 앙리 까르티에 브레송, 데이비드 시무어, 조지로저, 윌리엄밴디버트와 함께 보도사진 그룹 매그넘을 창립하기도 합니다. 1954년, 인도차이나전쟁 취재 차 도착한 베트남에서 지뢰를 밟고 사망하게 됩니다. 이 전쟁에서 '군인들의 뒷모습'을 마지막 사진으로 남기게 됩니다.


LIFE 사진전

2017년 7월 7일 ~ 10월 8일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



마치며

사진 동아리 출신으로서, 아주 흥미롭게 들은 에피소드 였습니다. LIFE 지와는 별개로, 채사장님이 제시했던 좋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잘찍은 사진이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여지가 있었습니다. 동아리 생활을 하면서 사진전을 하게 되는데, 그때 서로가 사진을 평가하면서 이건 이래서 좋다, 이래서 안좋다 하며 품평회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좋은 사진이 뭘까 하는 고민을 했었습니다. 카파의 말대로 피사체가 되는 사람이나 사물에 충분히 다가서서 사진을 찍다보면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을까요? 사진은 잘 찍고 싶은데 아직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채사장, 이독실님의 말대로 많이 찍으면 늘어날 지, 김도인님처럼 깨달음을 얻는다면 잘 찍을 수 있을 지 궁금하네요.


지대넓얕 153회-154회 [예술] LIFE 그리고 사진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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